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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文化柳氏孝行錄   부인성유기부재규문화인부인생이성어효애부모독년급간부모의욕위지상유칙첩체읍불긍식왈차신약적인불득양오부모부모책지연역련기지불강언이십이귀우사인삭령최광서사군자무위양구고일여부모극기성구고왈효부인무간언삼십구부유정질경불기임종단지신과구몰고노이자유가심빈양기고익근필치감지고우불행구라질난의부인우읍매야목욕기천청이신대내명기자현묵왈인언차기질야여신자불가불신사지이처부인칙주소불리고측범약이지물부호지절필궁친지기타체야측투야유공인혹견수지질불가위야이사치방지유불기어도규미유여감범십사년여일일야급기고기진시부인애호여절기고기광이복소자삼개목시부인왈오금사효부이서오목장불명의몰후과연오호부인진가위효부야오관금세이효칭자역다의내복노이기봉양이이미유지애지근어천성이능불투자유지노종시비해여부인자야언왈장병무효자황악질호장부유난황부인호오호부인진가위효부야부인지자현묵상위여누현연이언왈오모평생고심혈성유차지행이불능천오모불초죄대의공언지불문구장민언자기금불초이차필언여사불획인기기소문자여우   상지 이십칠년 경인 삼월 하한   성산 이도추 서         夫人姓柳其父載奎文化人夫人生而性於孝愛父母篤年及竿父母意欲爲之相攸則輒涕泣不肯食曰此身若適人不得養吾父母父母責之然亦憐其志不强焉二十二歸于士人朔寧崔光瑞事君子無違養舅姑一如父母極其誠舅姑曰孝婦人無間言三十九夫有貞疾竟不起臨終斷指身寡舅沒姑老而子幼家甚貧養其姑益勤必致甘旨姑又不幸遘癩疾難醫夫人憂泣每夜沐浴祈天請以身代乃命其子玄黙曰人言此忌疾也汝身子不可不愼使之異處夫人則晝宵不離姑側凡藥餌之物扶護之節必躬親之其唾涕也廁牏也惟恐人惑見雖知疾不可爲也而思治方之猶不己於刀圭靡有餘憾凡十四年如一日也及其姑氣盡時夫人哀號如絶其姑旣纊而復甦者三開目視夫人曰吾今舍孝婦而逝吾目將不瞑矣沒後果然嗚乎夫人眞可謂孝婦也吾觀今世以孝稱者亦多矣乃服勞而己奉養而已未有至愛之根於天性而能不渝自幼至老終始匪懈如夫人者也諺曰長病無孝子况惡疾乎丈夫猶難况婦人乎嗚乎夫人眞可謂孝婦也夫人之子玄黙嘗爲余淚泫然以言曰吾母平生苦心血誠有此至行而不能闡吾母不肖罪大矣恐言之不文久將泯焉子其衿不肖而泚筆焉余辭不獲因記其所聞者如右   上之 二十七年 庚寅 三月 下澣   星山 李道樞 書       夫人의 성은 柳氏니 그 아버지는 載奎요 본관은 文化이다. 타고난 천성이 어질고 貞淑하여 생장하면서 부모를 恭敬하고 愛親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부모가 시집보낼 뜻을 내비치자 부인 문득 눈물짓고 말하기를, ‘이 몸이 만약 시집을 가면 내 父母奉養을 못하게 될 것이다’고 하니 부모는 人道로써 꾸짖었으나 가엽고 애처롭게 여겨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나이 22세에 삭녕 崔光瑞에게 시집가서 夫君섬김에 거슬림이 없고, 시부모 봉양하기를 하나같이 친부모처럼 그 정성이 지극하니 시부모 가로되, ‘孝婦임에는 딴말이 없을 것이다’고 하니 보는 사람들 모두 옳다고 是認하더라. 39세에 부군이 貞疾에 걸려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고 임종 때에 斷指하여 注血했으나 끝내 回甦하지 못했다. 몸은 과부요 시아버지 기세하고 시어머니 늙었으며, 아이는 어리고 집은 심히 가난한데 시어머니 받들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여 입에 맞는 음식으로서 지성을 다했다.    媤母 또한 불행히도 악질에 걸려 낫지 않으니, 부인 근심하고 울면서 밤마다 목욕하고 하늘에 빌기를 내가 대신하기를 請하였다. 그리고서 이내 그 아들 玄黙에게 命해 이르되, ‘사람들이 이는 꺼리는 疾病이라 네 자식을 가히 삼가할지니라.’하고 다른 곳에 있게 하였다. 이에 부인은 밤낮으로 시모곁을 떠나지 않고 무릇 약과 먹을 것을 미리 갖추어 두고 부축하여 보호하는 절차 몸소 행했을 뿐 아니라 가래침, 대소변을 남몰래 처리하였다. 비록 병을 어찌하지 못함을 알면서 도 治方함이 刀圭로서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남은 餘恨이나 없겠끔 14년을 하루같이 받들었다. 그리고 시어머니 죽을 때에 哀號하여 부인도 역시 기절했는데, 시어머니 小殮에서 다시 눈을 뜨고 나 이제 효부를 두고 가게되니 내 누이 장차 감기지 않겠고나 하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아! 부인은 적이 좋게 말하자면 진실된 효부로다. 내가 보건데, 이 세상에 효로써 칭송받을 자 또한 많으나 복종하는 勞苦와 奉養뿐이라, 부인은 至愛한 天性으로 바탕하여 어릴적부터 老境에 이르도록 시종일관 한결같았다.    俗談에 이르기를, ‘장병에 孝子가 없다’라 하는데, 하물며 부인이랴. 아! 진실로 가위 효부로다. 부인의 아들 玄黙이 나를 보고 눈물흘리며 말하기를, ‘나의 어머니 평생토록 고생하신 효행을 闡揚하지 못하면 나의 죄가 크므로 선생께서 는 不肖의 請을 들어 주소서’ 하거늘 나 사양하지 못하고 그 들은 바를 위와 같이 기록하노라.   高宗 二十七年(1890) 庚寅 三月 하순 星山 李道樞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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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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