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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위치 : 학촌 증원산장 앞>

○ 處士恩津宋公在潤孝行碑   부효유제왕지효서인지효위백행지원대강자무귀천이사부모일야대순문왕위제왕이선사부모이칭고고시왕상거서인이선사부모이칭고상하천재능어효자기도대순문왕고시왕상이기재대재효야삼강지수충열칙효지소출야비효무충비충무열삼자여천지상시종이효자비불다야지어은진송효자재윤우극현저효행자가빈친노일야근노숙수감지지공상계불절이지체지양봉친의기친구저증문의구약일불해태문부어탕성약몰천강계칠삭여일일득쾌복이천수종애훼예제장후성묘이팔순노질매월일차수풍한염서무일일궐성맹자왈오십이모자대순견지팔십이모자금어송효자견지의고기사림내천송실록단자어천리경락시여질륭여비기인모애수기여우   공부자탄강 이천사백구십육년 을유 이월 하완   가선대부장예원경원임규장각제학   연안 이병관 찬 유학 김경수 서   자 병길 병희   손 학섭 진섭 동섭         夫孝有帝王之孝庶人之孝爲百行之源大綱者無貴賤而事父母一也大舜文王位帝王而善事父母而稱考高柴王祥居庶人而善事父母而稱考上下千載能於孝者豈徒大舜文王高柴王祥而己哉大哉孝也三綱之首忠烈則孝之所出也非孝無忠非忠無烈三者與天地相始終而孝子非不多也至於恩津宋孝子在潤尤極顯著孝行者家貧親老日夜勤勞菽水甘旨之供相繼不絶以志體之養奉親矣其親遘疽症問醫求藥一不懈怠聞鮒魚湯聖藥沒泉綱溪七朔如一日得快復以天壽終哀毁禮制葬後省墓以八旬老耋每月一次雖風寒炎署無一日厥省孟子曰五十而慕者大舜見之八十而慕者今於宋孝子見之矣故其士林乃薦送實錄單子於千里京洛示余耋癃余非其人慕哀遂記如右   孔夫子誕降 二千四百九十六年 乙酉 二月 下浣   嘉善大夫掌禮院卿原任奎章閣提學   延安 李炳觀 撰 幼學 金炅水 書   子 柄吉 柄喜   孫 學燮 縉燮 東燮         대저 孝道는 임금의 효와 서민의 효가 있나니 백가지 行實에 근본이 되므로 대강은 貴함과 賤함 없이 부모 섬김은 일치하는 것이다. 大舜과 文王은 임금의 지위에도 부모를 잘 섬기었고, 高柴와 王祥은 서민의 신분이면서도 부모를 잘 모시었다. 임금과 서민의 위아래 천여년 동안에 어찌 大舜과 文王, 高柴과 王祥 뿐이겠는가 크고나! 효도는 三綱의 으뜸이니 忠誠과 烈行은 효에서부터 나는 것이라. 효가 아니면 忠臣이 나지 못하며, 忠이 아니면 烈女도 없나니, 忠. 孝. 烈 3자는 하늘과 땅으로 더불어 관여되나 효자는 적지 않다. 이제 恩津宋孝子 在潤은 더욱 들난 분이다.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으셨는데, 밤낮으로 근로하여 菽水(변변하지 못한 음식)와 甘旨(맛난 음식)를 항상 끊이지 않고 養志하며 보신하였다. 그 어버이 황달병을 얻어 앓게되니 의원에게 문의하여 조금도 게으름없이 약을 구해 드렸다.    풍문에 붕어탕이 좋다기에 우물퍼고 개울에 그물쳐서 고기를 구한지 7개월을 하루같이 하였더니, 병이 나아서 天年으로 세상을 버리시었다. 哀毁 (몸이 상하도록 몹시 슬퍼함)하여 禮制따라 장사하고 그 뒤에 성묘하되, 八旬이 되도록 매월 한번식 비록 아무리 大風과 大寒. 大暑와 大雨라 할지라도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孟子가 말씀하시기를, ‘50에 思慕하는 것은 내가 大舜에 보았다’하셨으니 80에 사모하는 이를 이제 宋孝子에서 보았고나. 그러므로 그 고을 선비들이 이에 孝行 사실을 써서 천리길 서울에 띄운 것을 나에게 보이니, 나도 늙어서 老耋이 있는데다 또한 남을 찬양할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나마 그 효도에 애모하여 드디어 위와 같이 기록하노라.   孔夫子 찬강 2496년 乙酉(1945) 2월 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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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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