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 褒彰完議文(孝子孫永魏)   본소창건선성묘중형오륜행실이위숭유장선이열부단자총속래도중근안경남유사급   다사천상칙동도사천군읍동면감곡리효자손영위계출밀양진사휘수성후승언증손휘장   준손함상지지자야천성근후주밀효우비지사부모극기애경처형제진기우공산업불첨공   기효주난계조경전외야모매신외시만사불구외효분일심도재외애중부기국미보신체원   기가헌민전불핍불저수량이음불격외난계기유노소구이무원기자칠원제씨뢰자지고해   노강태동온하청조육석어탄갈무위친족마녕영의구약수원공감신중분우형우색유효창   희일우외기각평복내기록외시유여기제영상영익세불득기분호각거연연첨작린축리동   정울도원원조석상근기타돈목종족친절린리신호명우유도대기빈객이예정일용상례향   당위지이긍식사림위지이천양이왈간문용예승이덕야간모지고이중도야기위사인야이   지의의유표택성기이시불여인상차인묵유론제발급본소주이유성자부침재계건각비수   전의적영수풍성이도불후지의성종의문사   공부자 탄강 이천사백칠십년 기사 팔월   공부자성적도속수오륜행실중형소   도약장 창입약장 대판 선성묘   도유사 정성묵   약장 판서 박기양   판서 민경호   판서 민철훈   (이하 이십사명)         本所刱建先聖廟重刑五倫行實以爲崇儒獎善而列部單子總續來到中謹按慶南有司及   多士薦狀則同道泗川郡邑東面甘谷里孝子孫永魏系出密陽進士諱壽星后勝彦曾孫諱長   俊孫啣相至之子也天性謹厚周密孝友備至事父母極其愛敬處兄弟盡其友恭産業不瞻恐   其孝廚難繼朝耕田外野暮賣薪外市萬事不求外孝分一心都在外愛中父嗜麯味補身體元   氣加獻緡錢不乏弗底隨量而飮不格外亂階氣有怒消懼而無怨其慈漆原諸氏賴子之故偕   老康泰冬溫夏淸朝肉夕魚彈竭無違親族磨寧迎醫求藥隨願供甘愼重分憂形于色有效昌   喜溢于外期閣平復乃己綠外時裕與其弟永相永益勢不得己分戶各居然連簷作隣妯娌同   鼎鬱陶源源朝夕相謹其他敦睦宗族親切隣里信乎明友有道待其賓客以禮呈日用常例鄕   黨爲之以矜式士林爲之以闡揚易曰幹文用譽承以德也幹母之蠱以中道也其謂斯人也以   之矣宜有表宅盛氣而時不與人尙此湮黙儒論齊發及本所周而有成玆付鋟梓繼建閣碑壽   傳懿蹟永樹風聲以圖不朽之意成宗議文事   孔夫子 誕降 二千四百七十年 己巳 八月   孔夫子聖蹟圖續修五倫行實重刑所   都約長 刱立約長 代辦 先聖廟   都有司 鄭成黙   約長 判書 朴箕陽   判書 閔景鎬   判書 閔哲勳   (以下 二十四名)      ○ 포창완의 문-칭찬하고 권장하여 세상에 널리 나타내기를 완전 결의한 문장    본소(本所)는 선성묘(先聖廟 : 孔子를 비롯한 옛 성현의 제향을 모시는 묘각)를 창건(創建)하고 오륜행실(五倫行實)을 거듭 간행하여 성인(聖人)을 높이고 선행(善行)을 권장하기로 하였는바, 이에 여러 군(郡)에서 포창대상자의 추천 단자(單子 : 후보자의 명단을 적은 종이)가 연달아 내도(來到)한 것 중, 경남(慶南) 유사(有司)와 많은 선비들의 추천장을 삼가 살펴본 즉, 본도 사천군 정동면 감곡리의 효자(孝子) 손영위(孫永魏)는 본관(本貫)이 밀양(密陽)이오 진사(進士) 휘(諱) 수성(壽星)의 후손이며, 승언(勝彦)의 증손(曾孫)이오 장준(長俊)의 손(孫)이며 상지(相至)의 아들이다.    성품(性品)이 조심성 있고 인정이 두터운데다 어떤 일에든지 주도(周到)하고 세밀하여 효도(孝道)와 우애(友愛)를 한 몸에 지녔으며, 부모 섬김에 사랑과 공경을 지극히 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베풀었다. 집이 가난하여 의복과 음식물이 부족함을 염려하여 아침나절에는 밖에 나가 밭을 갈고 저녁나절에는 저자(市場)에 가서 땔나무를 팔았다. 아버지가 술을 즐기므로 아버지의 원기보신이 될 만큼 항상 절제하여 진공(進供)했으며, 또한 수시로 용전(用錢)도 드려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그 어머니 칠원제씨(漆原諸氏)도 효자의 극진한 봉양(奉養)으로 내외가 함께 해로(偕老)하며 안령함은,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아침에는 살코기 반찬이며 저녁에는 물고기 반찬으로 절대로 부모의 뜻에 어김이 없었다.    부모가 병이 나면 곧 의원(醫員)에게 묻고 약을 구해 써서 병이 나은 뒤에야 효자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사라지곤 하였다. 형편에 따라 아우 영상(永相)과 영익(永益)이 분가(分家)하여 살림을 차였으나 담이 서로 잇대어 닿고 이웃하여 축리(妯娌:형제의 아내가 서로 부르는 말, 동서간)가 한 솥에 밥지어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며 일가의 상하(上下)가 화목(和睦)하기 그지 없고, 인리(隣里:이웃간)에 친절하며 친구인 붕우(朋友)에게 유신(有信)하고 손님에게 예(禮)로서 접대하니, 향당(鄕黨:고향의 마을)에까지 소문이 나서 그 칭송하는 소리가 높았다.    사림(士林:선비들의 세계 곧 儒林)에서 찬양하니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글로써서 명예(名譽)를 들냄은 덕(德)을 받는 것이며 일을 맡아 잘 처리함은 중도(中道)라 하였기로 이 효자가 거기에 해당되리라. 마땅히 효자를 포양(褒揚)하는 정려(旌閭 : 충신.효자.열녀들을 그들이 살던 고을에 旌門을 세워서 표창하던 일) 가 서야 하는데 시대가 달라졌으니, 사림의 공론(公論)이 제창되어 효행의 찬양문(讚揚文)이 본소(本所)에 이르렀으매 이에 완의문(完議文)을 보내어 그 아름다운 효행을 비석(碑石)에 새겨 풍성(風聲:들리는 名聲, 또는 人品)이 기리기리 유전(流轉)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공부자 탄강 이천사백칠십년 기사 팔월(192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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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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