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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고종(高宗)에게 청토적복수소(請討賊復讐疏)를 올린 최동민(崔東敏)    최동민의 아호는 긍재(兢齋)이며 1854년(철종4년) 정동면 감곡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漢學)을 수학하였고, 타고난 성품(性品)이 영민(英敏)하여 헌헌장부(軒軒丈夫:외모가 준수하고 쾌활한 남자)로서 성장하였다. 청년기(靑年期)에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선생에게 사사(師事)하여 성리학(性理學)을 터득하였고, 장년기(壯年期)에는 한때 서사통사랑(筮仕通史郞)을 지냈다. 지기(志氣)가 있어 문학이 풍부하였으며 특히 의리(義理)에 과감하여 옛 선열(先烈)을 추앙했다.    그가 51세되는 해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많은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이 국권을 되찾고자 기의(起義)하였는데 , 최동민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배일.항일운동에 활동했다. 을사조약이란, 1905년(고종 42년, 광무9) 일제가 대한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체결한 늑약(勒約)으로, 이때 참정대신(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등이 완강히 거부했으나 적신(賊臣) 박제순(朴齊純). 이지용(李址鎔). 이근택(李根澤). 이완용(李完用). 권중현(權重顯)등 5명의 대신이 조약 체결에 찬성함으로써 조약이 체결되어 이로써 국권을 상실하게 되고 이들은 매국행위(賣國行爲)로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송연재(宋淵齋) 선생(學行으로 祭酒로 기용된 뒤 書筳官. 大司憲을 지냄)이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반증(反證)하려고 대궐에서 고종황제에게 상소(上疏)하려다 경무리(警務吏)에게 속아 일본헌병대에 의해 고향으로 강제 이송(移送)되자 마침내 순국(殉國)하였다. 이에 스승의 순국소식을 전해들은 최동민은 절통(切痛)한 나머지 여러 동지를 규합해 애국혈성(愛國血誠)으로 동심분발(同心奮發)하여 일본의 원흉(元兇) 이또오(伊藤博文)를 비롯해 오적(五賊)을 쳐서 복수하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논지(論旨)의 통문(通文)을 여러 고을에 돌리는 한편, 고종 황제에게는 청토적복수소(請討賊復讐疏)를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열사(義.烈士)들의 피나는 항쟁에도 불구하고 급기야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니 다시 한번 쇠잔한 국력을 한탄만 하고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통한(痛恨)할 뿐이었다. 최동민은 일제의 모진 압제와 감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불욕생(如不欲生)의 인고(忍苦)속에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유지미취(有志未就)를 담은 유고(遺稿) 두권을 남기고 1924년 향년(享年) 70세를 일기로 하동 옥종(河東 玉宗)에서 타계했다.    긍재(兢齋) 최동민(崔東敏)이 남긴 글 가운데 나라와 스승 연재(淵齋)선생을 잃은 슬픔을 구구절절히 표현한<請討賊復讐疏>의 원문(原文)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 請討賊腹讐疏(原文)   云云臣 等은 伏聞 民生於三에 事之如一故로 禮에曰 事君호대 有犯而無隱하며 左右就養하며 有方服勤하야 至死에 方喪三年하고 事父호대 有隱而無犯하며 左右就養하며 無方服勤하야 至死에 致喪三年하고 事師호대 無犯無隱하며 左右就養하며 無方服勤하야 至死에 心喪三年이라 하니 臣等이 伏念人之所以異於禽獸者난 以其有五常也라. 五常之中에 仁莫大於父子요 義莫重於君臣이니 而使父子而能仁其仁하며 君臣而能義其義者난 師也라. 是以로 生則敬養之하고 沒則致哀之난 其視君父로 初無毫髮輕重之分이니 此固天下之常理也라 其或不幸而遇非常之變과 罹橫來之厄하야 使君父與師로 或不得其死則爲臣子爲弟子者 所以痛憤疾怨하여 而求爲之必復其讐者 其志豈有窮哉잇가. 故로 傳에曰 父 生之하고 君이 食之하고 師 敎之하니 非父면 不生이요 非食이면 不長이요 非敎면 不知生之族也라 故로 一事之하야 惟其所在에 致死焉하나니 此言 在君에 爲君死하며 在父에 爲父死하며 在師에 爲師死난 初無彼此 先後之不同 而記禮者 亦曰 君父之讐난 不如共戴天하야 寢苫枕干하야 不與共天下也라 하니 言君父而師在其中矣로소이다. 宋臣胡宏이 嘗論夫子畏匡之事曰 使夫子 不幸而遇亂이면 回必損生而赴之矣오 損生而赴之하야 幸而不死則當上告天子하고 下告方伯하야 請討以復讐오 不但己也리라하니 此난 天經地義民彝之大者而有國有家者 尤當發揮表章하야 不可一日而不講也난 其故何也오 誠以爲不若是면 則天理滅息하고 人紀剝喪하야 臣焉不君其君하고 子焉不父其父면 而雖有秦楚之堅甲利兵과 韓魏之良弓勁弩 皆無所施用矣니 是以로 古之聖王이 汲汲焉惟此之爲務而旣以行之于當世하야 使之君君而臣臣하며 父父而子子하고 又復著之于禮經하야 爲天下萬世通行之大法하시니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니이다. 臣等은 故成均祭酒 贈議政府某官 謚文忠臣 宋某之門人也니이다. 臣師는 以先正之孫으로 學聖賢之學하야 養德林樊하고 不求聞達이러니 而 陛下卽位之初에 臨政願治하시고 求賢如渴하사 招以大夫之㫌으로 置之賓師之爲하시니 雖其衡門考樂 遐心莫回라 而丘園束帛과 恩禮愈隆이 前後四十餘年之間에 陛下之待臣以禮와 臣師之事君以義난 雖湯之於伊尹이나 無以加焉이며 而光武之於嚴光에 盖不足道也니이다.   世之人이 只見 臣師之未嘗任職居官으로 而不知其忠君愛國이 如此其切也며 只見陛下未嘗言聽計用而 不知其尊賢樂道 如此其至也로소이다. 君臣不遇之遇 可謂千載一時矣온 況 臣師之 仕止久速과 進退語黙이 又可以建天地 而質鬼神則所謂百世之眞儒오 一代之純臣也니이다. 嗚呼라 去年十月之變을 尙忍言之哉잇가 臣今某官李某 某官李某 某官朴某 某官李某 某官權某난 卽世之所謂五賊者也라 外挾仇讐之戎狄 하고 內售賣國之姦謀하야 閃忽狡獪난 不可方物이로소이다. 以堂堂한 本朝之十部大臣이 惟恐不得爲 伊藤博文之一等勳臣하야 藤曰 統監當置라 하면 五賊이 亦曰 可라 하고 藤曰 外部當廢라 하면 五賊이 亦曰 可라 하고 藤曰 各國令司當遣이라 하면 五賊이 亦曰 可라 하고 藤曰 各港理事當置라 하면 五賊이 亦曰 可라하야 使 高宗皇帝 五百年傳授之國을 一朝에 無故 而奉而獻之弑君殺父之一箇伊藤博文하야 上而使 億萬年宗社不血食하고 下而使 數千萬生靈無噍類而彼方且 揚揚自得하야 行呼唱於內庭外衢하야 自行其爲安策之元攻하니 嗚呼라 古今天下에 安有此等變怪乎잇가. 臣師感不世之知遇하고 痛宗國之滅亡하야 瀝血封章하야 請斬五賊하야 懸藁街하니 而 陛下俯鑒衷赤하사 使之上來則 臣師聞命隕越하야 不俟僂車하고 北風雨雪에 星夜赴 召而及其 賜對宣室也에 其所以建白 修攘之策과 鞏固恢復之基者 一則曰 五賊이요 二則曰 五賊이라 하고 密贊于中에 亦惟曰 五賊이라 하고 颺言于外에 亦惟曰 五賊이라 하니 盖五賊者난 得罪于宗廟아고 得罪于君父하고 得罪于朝廷하고 得罪于生民하니 夫 人이 有如此罪惡이오 而王章不加則 上無以慰宗廟之靈이요 下無以解生民之憤이요 內無以鼓忠臣義士奮發之志 外無以拆 夷狄禽獸覬覦之崩이며 今上自朝廷臣僚로 下至六軍萬姓이 無不欲食其肉 而寢其皮則 人心之所在에 天意를 可知矣니 此 臣師之所以不遑他事오 眷眷以討賊爲言이어늘 而陛下亦不以爲不可矣니이다. 彼五賊者 惟恐天心或悟而正論得行하야 社稷有重恢之望하며 夷狄有必退之期면 正名定罪하야 將不免身首 異處則 乃使其黨 尹喆圭로 陰售詭譎하야 欺以其方하고 矯以所無之皇勑하야 脅以不測之倭兵으로 載之火車하고 閃忽之頃에 送至鄕闕하야 使 臣師로 進不得有爲하고 退不得自由하야 賊臣 猖獗而不能討하고 社稷滅亡而不能存하고 道脈己絕而不能續하고 倫常己斁而 不能叙하니 而 陛下所以召之之旨와 臣師所以來之之意 初無一個半個之或需則. 義重泰山하고 命輕鴻毛하고 自靖以獻于 先聖先王而無所怨悔矣라 嗚呼라 尙忍言哉잇가. 臣等이 受學師門에 人品이 庸下하고 才器卑劣하야 其在當時에 不能而斬馬之釰과 擊蛇之笏로 擊尹喆圭之首以斃之하고 而兼及於 窩主之五賊하야 使 臣師로 良貝至此則 臣等之罪 固萬死而不足贖也니이다. 然 臣等은 秉彛之衷으로 同得乎天하야 倫常之重을 習聞乎師하야 亦知親上死長之爲 大而復讐討賊之不容但己也니이다. 今 臣師 不幸而罹殺身之禍 究厥端由면 五賊爲崇라 然則 殺臣師者난 五賊이요 而五賊者난 臣等不與共戴天之讐也니이다. 夫師生之於君父에 初無一毫間隔則 是與弑君殺父之讐로 一而己矣니 臣等이 固當寢苫枕干하며 臥薪嘗膽하야 圖所以復其讐로대 而窃念 陛下履艱難之運하며 際休恤之機하야 明天理 正人心 扶國脈 淑世道난 是 陛下所當汲汲講明者오 而匹夫匹婦 不得其死라도 猶當爲之雪恥報怨이오 況臣師난 是 陛下四十年禮遇之儒臣이요 欺文五千載 道傳之大賢이어늘 今乃爲 本朝五個賊臣所殺死則 爲人君上者 豈可坐視하야 恬然而不爲之復讐哉잇가. 且臣師난 非徒爲 臣等之師而己라 陛下踐阼以來로 尊禮優容하사 任之國子祭酒之職하시고 置之經筵書筵之選하시고 未嘗不以師傅之禮로 待之則求之於古에 雖天天子라도 無北面之禮난 所謂帝子之師 不臣之臣也니 然則 彼五賊者豈徒爲 臣等不共戴天之讐哉라 亦我 陛下不共戴天之讐也며 亦我 皇太子殿下不共戴天之讐也니이다. 臣等은 匹夫也라. 千里裏足하고 泣血叫閽은 猶欲爲其師復讐니 陛下以堂堂萬乘之君으로 獨不能爲其師傅而誅五個賊臣乎잇가. 萬國公議謂黨如何며 而百世之下 尙論之君子 將以陛下로 爲何等主也잇고 臣等은 窃爲 陛下不取也하노이다. 且彼五賊者난 賣君以媚虞하고 鬻國以肥身하야 但知有 日本而不知有本朝하고 但知有 伊藤博文而 不知有陛下하니 其在我邦에 卽天地神祗之讐也오 祖宗二十八世之讐也오 朝廷大臣重臣之讐也오 草野數千萬生靈之讐也니 陛下爲天地神祗之主로 承 祖宗二十八世無疆之統이어시늘 何所惜於 五賊而不爲之 明正其刑하사 上而爲慰天地白神하고 下而謝白官萬姓哉잇가.      嗚乎라 誠能赫然一怒하사 明正其罪하야 付之司敗하시면 師生之分이 明師生之分이 明而父子之倫이 正하고 父子之倫이 正而君臣之義 嚴하야 以至夫婦長幼之道 無不各得其當而正身 以正朝廷하고 正朝廷 以正百官하고 正百官 以正萬民이라 上有好者면 下必有甚焉者라 하니 雷勵風行하야 天開日明千歲萬歲하리이다. 中原에 有人하니 而彼東夷之飛炮火丸과 西洋之水輪陸轂을 吾將折菙而笞矣리니 顧何畏夫 伊藤博文之要盟勒約哉잇가 此理甚明하야 人所易見이어늘 不知陛下何憚而不爲乎잇가. 雖然이나 臣等이 亦嘗熟思之矣하니 以 陛下之明聖神武로 豈不知五賊之罪 上通于天而下徹于地哉며 又豈不知五賊之惡이 卿大夫國人이 皆曰可殺乎며 又豈不知爲師復讐 是公天下之大義乎며 又豈不知五賊誅而社稷以之尊安하며 家國以之重恢乎잇가. 誠以彼五賊者 外挾虜勢하고 內樹黨與하야 海外强隣을 皆爲心腹하고 朝廷百執을 盡其鷹犬하야 使 陛下로 束手束脚하며 畏首畏尾하야 孤立於上而不敢自由하니 陛下雖欲誅之나 而不可得也니이다. 臣等이 窃惟호니 之興哀撥亂之主 非柔仁慈愛之爲貴라 必剛明英哲之有餘 然後에 乃可與有爲也니이다 陛下御極以來로 仁心仁聞이 達於四海而國之削也滋甚하니 其故何也오. 而柔仁之有餘 而剛明之不足이오 因循姑息之常勝 而奮發蹈厲之或少也니 誠能斷自今日로 赫然發憤하사 衝天驚人을 法楚莊王弧矢鐵杖과 效宋高宗只要向前廝殺하야 不要退後占便則五賊이 雖强亢이나 臣也며 子也오 陛下雖孤立이나 君也며 父也니 以有道之君父로 誅無道之亂臣賊子 是豈挾山超海之難哉잇가.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 誠一開口則 陛下雖不能誅라도 而朝廷宰執이 必有誅之者矣며 朝廷宰執이 雖不能誅라도 而六軍萬姓이 必有誅之者矣며 天下之人이 雖不能顯戮이라도 而地中之鬼亦必有陰誅者矣니 如此면 不惟五賊이 得伏其誅라 而伊藤博文之首 亦將不日而可致於闕下矣리니 康獻皇帝之國이 豈不萬古長存乎잇가. 此在 陛下一轉手之間耳이니 願 陛下勿疑也하소서. 嗚乎라 時難得而易失이요 事易毁而難成이니 其存今日에 國家事尙可爲也로대 若更因循頹惰하야 過了時日則 無窮之禍와 不測之憂 將有不可勝言者矣면 陛下將何以處之也잇고. 臣等이 受業先師之門하고 涵育聖化之囿하니 義不與五賊으로 共戴一天이며 先師 爲國死하니 臣等이 獨不爲先師死乎잇가. 陛下如以臣言으로 爲可用인댄 而卽賜允兪하사 以之明天理하며 以之正人心하며 以之叙旣斁之彛倫하며 以之復旣屋之宗社則 臣等이 生當隕首오 而死當結草矣로대 如以誣罔則請斬 臣等 千有餘人之首하야 內以謝五賊하고 外以謝天下萬國이 又是 臣等區區之至願也로소이다 師死而棟樑이 折矣며 國亡而帲幪이 掇矣라 臣等이 寧碎首天陛라도 生爲李氏之民이요 死爲李氏之鬼로 下從先師於地下언정 區區不願爲五賊之黨으로 與伊藤博文之陪臣也니이다. 臣等이 無任激切屛營之云云하나이다. 臣師殉國于沃川之石南舊策하니 越翌日에 訃至本家하니 其女奴姓某名某者痛哭하야 如不欲生하고 引刀欲自裁曰 大監 爲國死하니 奴 獨不可爲大監死乎아 家人이 呵止之러니 其夕에 竟自裁于後園하다. 嗚乎라 是亦先師敎化中一物也라 人雖有貴賤이나 義豈有彼此릿가. 況當此亂世에 固當褒獎節義하야 以勵具臣이요 其在於賤人奴隷者엔 犬當汲汲表美하야 以媿士大夫也니이다. 伏望 階下有以褒之하시면 而彼五賊之賣君鬻國者 反不如宋氏之一女奴則 聞此 寧不顙其有泚乎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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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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