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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泗川睦氏先山祭壇碑銘幷書   제단비하위이건수야영모조선봉승향화지소칙기불신차중재오지성출어사천이려조합문지후휘덕창비조의지후공현손문하시랑찬성사휘인길당공민조시일비고둔거우득성지사천시위거사지현조이기후자손면연불절체지아선조조임진전역후루대선영수재보첩중소연술선기전불소위인자손자망극무야의구기리칙불월호미수표석야명의견금칙기무전철후감지탄야금년팔월성소시래참제종함왈각처선산벌석수표이위영세지감운의이차침곡산찬성공십사세손통정대부휘화경배숙부인포산곽씨량위묘소급통정공자통덕랑휘재인계배공인라주정씨묘소통덕공증손서오학생휘태영배유인김해김씨배유인김령김씨삼위묘소병육위간좌계장지처야각수표석사유당연사거력면지지축단건비이이위시향지소차기실촉어불초봉선지도불감사이근기언종이명왈 니산흘혜 사수왕양 단방비혜 니치사장   세재 중원 경진 십일월 일   칠세손 준균 근식   밀양 박헌기 근서         祭壇碑何爲而建修也永慕祖先奉承香火之所則豈不愼且重哉吾之姓出於泗川而麗朝閤門祗候諱德昌鼻祖矣祗候公玄孫門下侍郞贊成事諱仁吉當恭愍朝時日非故遯居于得姓之泗川是爲居泗之顯祖而其後子孫綿延不絶逮至我宣祖朝壬辰戰役後屢代先塋雖載譜牒中昭然述先其傳不少爲人子孫者罔極無也矣究其理則不越乎未竪表石也明矣見今則豈無前轍後鑑之嘆耶今年八月省掃時來叅諸宗咸曰各處先山伐石竪表以爲永世之感云矣而此針谷山贊成公十四世孫通政大夫諱和敬配淑夫人苞山郭氏兩位墓所及通政公子通德郞諱載仁繼配恭人羅州丁氏墓所通德公曾孫序五學生諱台榮配孺人金海金氏配孺人金寧金氏三位墓所並六位艮坐繼葬之處也各修表石事由當然事巨力綿只止築壇建碑而以爲時享之所且記實囑於不肖奉先之道不敢辭而謹記焉從以銘曰 尼山屹兮 泗水汪洋 壇方碑兮 尼峙泗長   歲在 中元 庚辰 十一月 日   七世孫 浚均 謹識   密陽 朴憲琦 謹書         제단과 단비는 무엇 때문에 세우며 수리하는가. 선조를 길이 사모하여 제사를 받드는 곳인즉, 어찌 신중하지 않으리오. 우리의 성은 泗川을 본관으로 하니, 고려 때의 閤門祗候(고려 閤門의 한 벼슬) 휘 德昌이 시조로 지후공의 현손 門下侍郞 贊成事 휘 仁吉은 공민왕조에 당하여 시일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으로 은거하여 本鄕하시니 이분이 사천의 顯祖이시다.   그 후 자손이 길게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고, 조선 선조 때의 임진란 전역 뒤 여러 代의 선조의 塋域이 족보에는 분명히 기재되어 있으나 그 傳해옴이 적지 않아 후손들의 망극함이 그지없다. 그 사정을 探究하면 墓表가 없었기 때문이라 이르고 보면 어찌 전철과 후감의 탄성이 없으리오. 금년 8월 성묘 때 내참한 종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각처 선산마다 상석을 세워서 영세도록 감모하자는 뜻을 밝혔다.   이곳 針谷山은 贊成公의 14세손 通政大夫 휘 和敬과 배 淑夫人 苞山郭氏 양위분의 묘소며, 또 通政公의 아들 通德郞 휘 載仁의 계배 恭人 羅州丁氏의 묘소요, 通德公의 증손가운데 차례로 다섯째 학생 휘 太榮, 배 유인 金海金氏와 배 유인 金寧金氏 3위의 묘소니 함께 6위로 艮坐 계장한 곳이다.   각각 묘앞에 표석을 세움이 당연하나 일이 너무 벅차고 힘에겨워 다만 제단을 쌓고 단비를 세워 시향드리기로 하였다. 또한 나에게 이상의 사실을 쓰라고 하기에 奉先하는 도리에 감히 사양치 않고 삼가 기록하고 이에 銘하여 이르되, ‘尼丘山의 우뚝함이여 泗水가 깊고 넓도다. 단모아 비 세웠으니 높이 솟은 尼山과 泗水처럼 영원하리라.’      歲在 中元 庚辰(1940年) 11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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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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