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6. 산음재기(山陰齋記)   조씨(曺氏)의 발상지(發祥地)는 창녕(昌寧)으로 태사공(太師公) 휘 계룡(諱繼龍)을 시조(始祖)로 하여 그 후손(後孫)은 수만호(數萬戶)에 달(達)한다. 대대(代代)로 빛나는 가문(家門)으로 어진분과 큰 벼슬이 많아 팔평장사(八平章事)가 있어 나라안의 타문(他門)이 우러러보는 거족(巨族)이다.   이씨조선(李氏朝鮮)에 들어와 시(諡) 충익공(忠翊公) 이조판서(吏曹判書) 휘(諱) 문택(文澤)과 매암(梅庵) 죽헌(竹軒) 같은 삼선생(三先生)이 있어 더욱 빛났다. 그후로 동생(董生)같은 은덕군자(隱德君子)가 많았으니 인조(仁祖) 산음재공(山陰齋公)   휘(諱) 하계(夏啓) 께서 그중의 한분이시다.   공(公)은 열선조(列先祖)의 업적(業蹟)을 이으시어 침묵(沈黙)하고 돈후(敦厚)하며 주밀(周密)하고도 자상하시니 옛것을 좋아하며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여 항상(恒常)안으로 몸을 닦고 세상(世上)에 이름을 구하지 아니하고 일생(一生)을 마쳤다고 전하니 아까운 일이다. 중세(中世)에 첨추공(僉樞公) 휘(諱) 원우(元佑)께서 선향(先鄕) 안음(安陰)에서 진주서면(晋州西面;현 옥종)으로 이거(移居)하시고 차자(次子) 휘(諱) 경홍(慶洪) 기자(其子) 도사공(都事公) 휘(諱) 현(睍) 기자(其子) 휘(諱) 시호(時豪) 3대께서 진주동면(晋州東面:현 금곡면)에 사셨으니 휘(諱) 시호(時豪)는 즉 산음제공(三陰齋公)의 아버님이시다.

  공(公)께서 숙종(肅宗) 경오(庚午 ; 1690)년 10월 곤양군 소곡면 송림촌 (昆陽郡所谷面松林村)으로 이거(移去)하시고 이어 곤명촌(昆明村)으로 이사(移徙)하였으니 산수(山水)도 좋고 들도 좋아 은인군자(隱人君子)의 살곳이라.   공(公)께서 이곳으로 옮긴것이 진실(眞實)로 이러한 까닭이니라 이제 공(公)의 세상(世上)을 돌이켜보니 300년이라 자손(子孫)이 번성(繁盛)하여 동우(棟宇)가 즐비(櫛比)함에 오고가는 자(者) 뉘라서 부러워 아니하랴. 이것이 모두 공(公)의 덕(德)을 쌓은 보람 아니겠는가   진주(晋州)를 비롯한 열읍(列邑)에서 살고있는 어질고 충신(忠信)한 후손(後孫)들이 어찌 선조(先祖)의 재실(齋室)짓는 일을 잊을것이며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도리(道理)를 생각(生覺)하지 않으리요.   후손(後孫) 동주(東柱)군의 조상(祖上)을 섬기고 집안을 사랑하는 정신은 천품(天品)이라 지나간 갑인년(甲寅 ; 1974) 봄에 그 효사지심(孝思之心)으로 제족(諸族)과 의론(議論)하여 모두 새재목(材木)으로 9간(間) 3동(棟)을 공(公)의 종거지(終居地)인 본촌(本村)의 동산양지(東山陽地)에 이룩하니 두드러저 날아갈 듯 훌륭하여 선조(先祖)를 사모(思慕)하고 제(祭)차림에 족(足)할 것이다.

  공(公)의 호(號)를 따라 재명(齋名)을 그대로 함은 조상(祖上)을 그리는 정성(精誠)이다. 어느날 군(君)이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거늘 내가 글을 잘하지 못하나 사양(辞讓)치 못하고 성(誠)을 다하여 쓰노니 선조(先祖)의 제사(祭祀)에 오직 성의(誠意)가 없을까 두려워함은 효(孝)의 도리(道理)요 조선(祖先)이 못하신 일을 창조(創造)하여 무궁(無窮)하게 전(傳)하고저 함도 미루어 보면 효도(孝道)일진대 이곳에서 영원(永遠)히 계심과 같이 정성(精誠)껏 제사(祭祀)모시고 종족(宗族)이 모여 선조(先祖)의 크신 덕(德)을 존모(尊慕)하고 화수(花樹)의 정의(情誼)를 돈독(敦篤)하게하여 백세(百世)를 하루같이 한다면 위씨(韋氏)의 화수지회(花樹之會)의 아름다움이 어찌 옛일이라고만 하겠는가 뒷날에 오늘을 봄도 오늘날 옛날을 봄과 같으리니 뒷날 오늘의 조씨(曺氏) 모임이 옛날 위씨(韋氏) 모임과 짝하여 아름답다 하지않으리오.   연후(然後)에야 가(可)히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도리(道理)를 다하였다 할수 있을것이오 이 재실(齋室)의 이름도 무궁(無窮)히 전(傳)하리니 모두 힘쓸지어다 이 대역(大役)에 종손(宗孫) 을문(乙文) 후손(後孫) 경주(庚鑄)의 정성(精誠)과 노고(勞苦)가 크도다.   세정사(歲丁巳) 한식전(寒食前)   진산(晉山) 하 동 근 (河 東 根) 기 (記)

산음재기 조씨발상어창녕이태사공휘계룡위비조자기려불억이연세선혁명공석덕배출약팔평장사지현관 칙위국망족이체지어이한조시사익공사조판서휘문택급매암죽헌삼선생출우저언자후간세이유 은거행의모동생지풍자인묘지세유휘하계호산음재공즉기일개공승습열조지업유염유소념정과 묵돈후주신호고기학이상이내수위심불구세이소요상양호산수지간안기소락이궁약이종언우하 기석재중세첨추공휘원우자선향안음시이우진지서면이차자휘경홍기자도사공휘현기자휘시호 칙공지고야지공지세가둔우곤양군소곡면송림촌숙종경오십월후차이우곤명촌개시야산자수명 천원청개정의은인군자지소거칙공지전거우차량유이야금거공지세삼백유년이초료번연동우즐 비동남과자막불지묵차탄이위공적덕지식보야기후손지거본주급열읍자다준우충신칙하상일일 망긍구긍당지사이불사소이위추원보본지도야후손동주군지존조위족지성태기천성연야왕재갑 인춘협모대종이탄효사경기총이신재창삼동구간우공지종소거본촌동산지양심걸각야환연익연 이족위우모치재지소이이호편명추모지성야일군래문기어동근여비능언자불감사이구내복지왈 범제선조이유공불성효지도야창선인소미황지사욕전지무궁역효지추야우이견길이제명성복이 치여재지성우회족이모선조지덕돈화수지의백세여일일칙위씨화수지회해전미어석야후지시금 역류금지시석야안지이시금일조씨화수지회여고위씨화수지회불위필미어세야연이후하이위능진추 원보본지도이사제지명가기전지무궁의가불면전재시역야현노자주손을문후손경주야 세정사한식전 진산 하동근기 山 陰 齋 記 曺氏發祥於昌寧以太師公諱繼龍爲鼻祖者其麗不億而聯世蟬奕名公碩德輩出若八平章事之顯官 則爲國望族而逮至於李韓朝諡史翊公史曹判書諱文澤及梅庵竹軒三先生出尤著焉自後間世而有 隱居行義慕董生之風者仁廟之世有諱夏啓號山陰齋公卽其一盖公承襲烈祖之業擩染有素恬靜寡 黙敦厚周愼好古嗜學而常以內修爲心不求世而逍遙徜洋乎山水之間安其所樂而窮約以終焉吁何 其惜哉中世僉樞公諱元佑自先鄕安陰始移于晋之西面而次子諱慶洪其子都事公諱睍其子諱時豪 則公之考也至公之世嘉遯于昆陽郡所谷面松林村肅宗庚午十月后次移于昆明村盖是也山紫水明 川原淸塏政宜隱人君子之所居則公之奠居于此良有以也今距公之世三百有年而椒聊蕃衍棟宇櫛 比東南過者莫不指黙嗟嘆而謂公積德之食報也其后孫之居本州及列邑者多俊又忠信則何甞一日 忘肯構肯堂之事而不思所以爲追遠報本之道耶後孫東柱君之尊祖爲族之誠殆其天性然也往在甲 寅春協謨大宗而彈孝思經紀總以新材創三棟九間于公之終所居本村東山之陽甚傑閣也奐然翼然 而足爲寓慕致齋之所而以號扁名追慕之誠也日君來問記於東根余非能言者不敢辭而久乃復之曰 凡祭先祖而惟恐不誠孝之道也創先人所未遑之事欲傳之無窮亦孝之推也于以蠲吉而齊明盛服以 致如在之誠又會族而慕先祖之德敦花樹之誼百世如一日則韋氏花樹之會奚專美於昔耶後之視今 亦類今之視昔也安知異時今日曺氏花樹之會與古韋氏花樹之會不爲匹美於世耶然而後何以爲能盡追 遠報本之道而斯齊之名可期傳之無窮矣可不勉旃哉是役也賢勞者胄孫乙文后孫庚鑄也 歲丁巳寒食前 晋山 河東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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