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공파(三賢公派) 완사<浣紗> 중조(中祖) 휘(諱) 관(管)을 일세(一世)로 함이니 관(管)은 고려(高麗) 충열왕(忠烈王)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시(諡)가 문정(文貞)이고 김유신(金庾信)의 후예(後裔)이다. 삼현(三賢)이라 함은 시조(始祖)에서 53세손 절효공(節孝公) 극일(克一)과 55세손 일손(馹孫) 56세손 삼족당(三足堂) 대유(大有)의 삼위(三位)가 삼현(三賢)으로서 자계서원(紫溪書院)에 병행(並享)함으로 이후 손을 삼현파(三賢派)라 한다. 67세손(世孫) 응순(應珣)이 고성(固城) 와룡산(臥龍山)밑 하죽리(下竹里)에 세거(世居)하다가 1870년 서실(正谷)로 이주(移住)하여 뛰어난 의술(醫術)로 명성(名聲)이 높았다. 68세손 남두(南斗)는 17세에 칠서(七書)를 암송(暗誦)한 준재(俊才)였으며 또 68세손 상두(庠斗)는 곤명면장(昆明面長) 성방면장(城方面長)을 역임(歷任)하였다. 69세손 용수(容洙)는 사학강습소(私學講習所)를 개설(開設)하여 후진(後進)을 많이 양성(養成)하였다. 종손(宗孫)은 70세손 길종(吉鍾)이고 문중(門中) 대표(代表)는 현 곤명공학교 교장 흥곤(興坤)이다. 입곤명(入昆明) 이후(以後) 손세(孫勢)는 15호이며 완사 주변에는 5호이고 나머지는 마산(馬山) 부산(釜山) 서울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