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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2. 임수(林藪)

임수(와티) O부근

  임수는 일정한 지역에 목본(木本)집단으로 조성된 조림지로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마을 주변에 집단 휴식처, 야외 집회장, 경관, 미화용과 풍치림으로도 가꾸었으며, 풍수학에 따른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성하기도 하고 방풍림으로도 조성했다.   우리 면에 대표적으로 무고리 원동마을의 노거수(老巨樹)군과 중항리 와티 앞 사공등의 노송군 두 곳이 있다.   원동마을의 임수에 대해서는 <용당문집>(용당 권영집의 문집으로 권영집은 반성 사람으로 이 곳 원동에 잠시 머물면서 이 글을 썼다고 함.)에 동전노수단기(洞前老樹壇記)를 완전 번역하여 기재하며 기문 내용이 너무나 명문이여서 이 임수에 대해 모든 것을 잘 설명하고 있어 기문으로 대신하고, 이 곳 원동 임수가 자연 풍류가 목적이였다면 중항리 와티 임수는 풍수에 의거 마을의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秘保林)   길지의 결함을 보완하는 보허법(補虛法)으로는 양기(陽基)를 사람이 메우는 것, 또 산을 만들어 보충하거나 흙과 돌을 두거나 나무를 심어 충당하는 등 종류가 많은데 와티마을 앞의 임수(노송군)는 와티마을에서 남으로 보면 사공등이 원줄기 산맥을 타고 내려오다가 사공등을 만들면서 잘록하게 되어 거의 섬 형태로 되고 낮아진 곳으로 먼 곳이 보여 산 사이로 먼 곳을 보게되면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 하여 나무를 심어 시야를 가리게 한 것이다. 지금도 연대를 알 수 없는 노송들이 잘 자라고 있어 와티마을이 부촌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1) 洞前老樹壇記 ◦소재지 : 무고리 원동

노거수군(老巨樹群)

理明之東昆山之北洞府深邃溪林明麗名之曰武庫洞之西北有奧環臧山而爲區層鱗連堵而成村是爲院洞洞前有老樹三株凡凡鼎立乎野之盡山之端靄然成林蒼然成盖土石成壇高可以數十尺廣可以數十坪前臨長野傍通兩谷高低蒼松左擁右圍通溝灌水一支衝壇而西流一支穿石橋而注下爲瀑彼密密繁陰鎭日雖可得於他林惟噴瀑高壇短橋長林備一區而兼得惟一見於此壇也不知種者之誰也而年躋百餘古人云十年之計莫如種樹追感先人之己有百年計也若夫長夏炎蒸登斯壇也籍石橋而濯足依高壇而披衿則淸風驅於一望之野而吹頂白玉碎於咫尺之瀑而轟耳不知扇子之釋手而惟嫌巾帽之兌頂洞中老少團坐休憩焉談農焉擧洞中事而論議焉或置酒而團樂焉或解蓑而長歌焉自擬羲皇葛川氏之民也非惟居人之朝暮愛着也行客旅人亦贍望來憩而忘歸也更待斜日落於西山靑煙散於遠郊聽罷樵童數聲之笛亦山居之勝觀也亦非惟夏日之貢美若新綠姸姸嗅幽谷之習鳥霜葉蕭蕭集遠天之寒鴉脫葉古枝悄然戴雪皆隨序替呈之奇觀也去年春洞居之人憫築壇之壞堆共役增築壇愈整堅樹愈茂榮余寓在院洞朝暮愛過者今八年矣感前人之蹟而因冀後人之加誠永保此壇云爾 庸堂 權寧執 記   <동리앞 노수(老樹)단의 기문> 이명산(理明山)의 동쪽 곤양(昆陽)의 북(北)에 산촌(山村)이 깊숙하고 시내와 수목(樹木)이 밝고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무고(武庫)요, 동(洞)의 서북(西北)에 산(山)이 사방(四方)으로 둘러싸이고 집 울타리가 서로 연(連)하여 작은 마을을 이루니 원동(院洞)이요, 동리 앞에 노수삼주(老樹三株)가 범범하게 들판의 끝난 곳 산록(山麓)에 정립하여 애연히 숲을 이르고 창연히 울창하며, 또한 토석(土石)으로 단(壇)을 이루어 높이는 가히 수십척이요 넓이는 수십평이라. 앞에는 넓은 들판이요, 옆으로는 두 골짜기가 서로 통(通)하였으며, 높고 낮은 창송(蒼松)이 좌우(左右)에 울창하며, 도랑을 파서 관수(灌水)하니, 한줄기는 단(壇)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한줄기는 석교(石橋)를 통하여 아래로 폭포수(瀑布水)를 이루니, 저 울창한 녹음(綠陰)은 다른 수목(樹木) 어디든지 볼 수 있으나, 폭포(瀑布)와 높은 단(壇)과 석교(石橋)와 울림(鬱林)이 한곳에 겸비(兼備)한 곳은 오직 이곳에서 보겠도다. 누구가 심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백여년(百余年)이 지난 것 같은 노수(老樹)이다. 옛말에 십년지계(十年之計)는 나무를 심는데 있다 하였으니, 선인(先人)이 이미 백년(百年)의 대계(大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복(三伏)찌는 더위에 이 단(壇)에 올라서 돌다리에 앉아 수족(手足)을 씻고 높은 단(壇)에 기대여 옷깃을 헤치면, 청풍(淸風)은 앞들에서 일어나 금희가 새락하고 백옥(白玉)같은 지척의 폭포(瀑布)는 귓가에서 소리하니, 부채는 손에 가질 필요조차 없고 수건과 모자는 자주 벗겨짐이 불안(不安)할 따름이다. 동중(洞中)의 노소(老少)가 두루 앉아 휴식하며, 농사이야기를 나누며, 동중사(洞中事)를 논의(論議)하며, 혹(或) 술잔을 나누고 즐기며, 또는 도랭이를 벗고 노래하며 스스로 태고(太古)라, 복희씨(伏羲氏)와 갈천씨(葛川氏)의 백성이라 하더라. 또한 동민(洞民)들만 아침 저녁으로 즐거워함이 아니라 길가는 나그네도 바라보고 쉬어서 갈길을 잊었도다. 다시 서산(西山)에 낙일(落日)하고 저녁 연기가 교외(郊外)에 흐터지면, 초동(樵童)목수의 피리소리는 또한 산중(山中)의 승경(勝景)이라. 또한 하일(夏日)의 녹음(綠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봄날 새싹이 돋아날 때 유곡(幽谷)의 꾀꼬리 울음소리와 가을 서리 낙엽(落葉)이 소소할 때 원천(遠天)의 한아(寒鴉)가 떼로 모여 들며, 소탈한 고기(古枝)에 백설(白雪)이 쌓여 있으면 모두 절기(節氣)따라 변천하는 아름다운 경관(景觀)이다. 거년(去年)봄에 동민들이 단(壇)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힘을 모아 수축(修築)하니 단(壇)은 다시 복원되고 노수(老樹)는 다시 무성(茂盛)하다. 나 원동(院洞)에 우거(寓居)하여 조석(朝夕)으로 지나 다닌지가 이제 팔년(八年)이라. 전인(前人)의 업적에 감동(感動)하고 후인(後人)이 더욱 정성을 다하며 길이 길이 단(壇)과 노수(老樹)의 보호를 바라는 바이다.   용당 권영집이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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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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