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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1장 곤양군의 탄생   곤양은 본래 하동군의 영현으로 고려 현종 무오년(1018)에 진주에 소속된 곤명현에 속하였다.   조선 초 세종 즉위년(태종 18년, 1418) 11월 5일 왕의 어태(御胎)를 현에서 20리 북쪽 소곡산(所谷山)에 매안(埋安)하고, 다음해 기해(1419) 3월 27일 남해현을 곤명현에 합하여 승격시켜 곤남군(昆南郡)을 만들었다. ‘곤남’이란 명호는 곤명현과 남해현 두 고을의 머릿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 지명이다. 그 외 곤산, 철산 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당시 남해현은 고려말 공민왕 무술년(1358)에 왜적으로 인하여 땅을 잃고, 진주 임내인 대야천 부곡(大也川部曲)(현 하동군 북천면)에 교거(僑居)하였는데, 태종 갑오년(1414)에 하동과 합하여 하남현(河南縣)으로 일컫다가, 을미년(1415)에 다시 하동현과 분리하고 진주 임내인 금양부곡(金陽部曲)을 남해에 붙여서 해양현(海陽縣)이라 일컬었다. 그러다가 정유년(1417)에 금양(金陽)을 다시 진주에 붙이고 또 다시 남해현으로 삼았다가, 앞서 말한 기해년(1419)에 곤명현에 합하였던 것이다. 이후 군현병합 여부에 관해 조정에서는 찬반의 논의가 있었는데, 세종은 수구염신(守舊厭新)의 소민(小民) 상태(常態)라고 지적하고 군현을 병합하는 일은 대사(大事)이니 가볍게 결정할 일이 못된다고 하여 그 실시를 풍년 이후로 미루었다.   이에 따라 세종 19년(1437)에는 남해현을 분리하고 진주 임내의 금양부곡을 딸려서 ‘곤양군(昆陽郡)’이라 개칭하였다. ‘곤양’이란 이름 역시 곤남의 머릿글자와 금양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합성한 명호가 되었다.   이리하여 곤양군은 사천현보다 그 규모가 컸던 읍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선초 지방제 정비 직후 곤남군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진주에 이르기 17리, 서쪽으로 하동에 이르기 6리, 남쪽으로 하동에 이르기 14리, 북쪽으로 진주에 이르기 9리이다. 아울러 중종대의《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한 곤양군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사천현계에 이르기 28리, 서쪽으로 하동현계에 이르기 9리, 남쪽으로 남해현계에 이르기 45리, 북쪽으로 진주목계에 이르기 37리이며, 서울과는 957리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곤양군은 1914년 부령 제111호(1913. 12. 29 공포)에 의거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사천군에 합병(서면, 금양면 제외)되어 곤양면으로 됨으로 495년간의 곤양군 역사는 명암(明暗)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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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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