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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해전

사천해전

사천해전은 최초의 거북선 투입해전으로, 1592년 5월 29일 적선수 10척이 사천, 곤양등지 까지 쳐들어 왔다는 원균의 급보를 받은 전라좌수영 함대는 5월 29일 새벽 척수를 출발하여 남해노량에 도착하니 원균은 다만 3척의 전선을 이끌고 대기하고 있다가 전라좌수영 함대를 보고 달려와 왜적이 사천선창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함대는 쉬지않고 노를 재촉하여 사천선창에 도착하여 보니, 산이 선창을 둘러싸고 7,8리나 뻗혔는데 형세가 험준한 곳에 왜적들이 수백명씩 진을 치고 계획적으로 대항할 태세였으며, 바다에는 12척의 적선이 정박해 있는데 배에도 적도들이 늘어서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들이었다. 이순신수사가 상황을 판단하건데 바다가 얕고 벌써 썰물이라 판옥선 같은 큰 배가 쉽게 돌진할 수 없고, 날도 또한 어두워가니 무모한 공격을 피하라고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적들이 몹시 교만한 태도를 가졌는데 우리가 만일 짐짓 물러나면 저놈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나와 우리와 싸우려고 할 것이니 우리는 적들을 한바다로 끌어내어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다." 함대가 뱃머리를 돌려 10리도 못나와 이순신수사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왜적들이 모두 산에서 내려와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전라좌수영함대는 일제히 뱃머리를 돌려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천해전에서 그 유명한 거북선이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그 용맹을 떨치는데 이 사천해전이 얼마나 치열하였던가는 충무공이 당포파왜병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거니와 충무공은 이 전투에서 왼쪽어깨에 조총을 맞아 그 후 이 상처 때문에 수년을 고생하게 된다. 왜적의 배 12척을 모조리 불살은 후 사천 땅 모자랑포로 이동하여 밤을 세웠다.

이후 지금의 신수도와 남일대 앞바다를 지나 사량도를 거쳐 동쪽으로 향한다. 이 사천해전은 2차 임진란 전투의 첫 승리 전투이자 거북선이 최초로 투입된 전투로써 이후 있게 될 당항포 해전, 합포 해전, 부산포 해전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일보군의 보조 진격로였던 선진리 성르 확보함으로써 일본군의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하여 임진왜란 전투의 전반적인 반전을 가능케 했던 사실상의 핵심전투였던 것이다.

서해안의 아산만과 현충사로부터 진도의 명량대첩과 이순신장군 기념관, 남해의 충렬사, 고성 당항포, 통영의 한산도, 마산, 부산 등으로 이어지는 남해안 곳곳에는 크고 작은 임진왜란 기념관과 성웅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지만 정작 세계 해전사에 가장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천해전의 역사는 초라하기만 하다. 반드시 박물관이 있어야만이, 기념관이 있어야 역사가 증명괴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역사는 후세의 사람들이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의 소중함을 상실해가는지도 모른다. 유리관속으로 들어가는 역사는 진정한 역사로서의 생명력을 이미 상실해 버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란 것이 사람들의 기억을 망각의 세계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잊혀지는 두려움보다 더운 두려움이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정리하여 잊혀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 땅의 소중함을 위해 싸우다 가신 님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매향비와 향촌

매향비 매향비

예로부터 우리 고장은 지향개로 불리워졌던 곳이다. 일본식 표기법에 따라 향촌(香村)으로 명명되었다고 그 의미가 사라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마을이 향(香)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먼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있는 향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향에는 사향(麝香)을 비록하여 독누, 용뇌, 전단, 침수향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침수향이 가장 좋으니 이는 아주 오래 묵은 향나무의 심으로, 물에 넣었을 때 깊이 가라 앉을수록 향내가 짙고 좋은 것이다.'

침수향은 줄여서 침향이라고 많이 부른다. 향 중에 가장 좋은 침향을 불전에 올리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과 함께 고려말 조선초기에는 향을 오랫동안(첫년) 땅에 묻어 침향을 만드는 매향의 의식이 많이 행하여졌다. 향을 오랫동안 땅에 묻어두면 보다 단단하여지고 굳어져서,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침향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매향의 풍습을 기록한 매향비(埋香碑)는 현개 5기가 발견되었다.

연대순으로 보면

  • 1335년(충속왕 복위 4년)에 세운 정주 매향비
  • 1389년(우왕 13년)에 세운 사천 매향비
  • 1405년(태종 50년)에 세운 암태도 매향비
  • 1427년(세종 9년)에 세운 해미 매향비 등이다.

이들 매향비가 세워진 지역은 모두 바닷물이 유입하는 내만이나 첩입부에 위치하고 있다. 좋은 침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기가 산곡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남아 있는 매향비를 통하여 볼때, 매향을 위해 사람들은 보, 결계 향도 등의 조직체를 만들었고, 승려보다는 일반 민중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왜 그들은 지금 현세에서 사용할 수도 없는 침향을 만들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깊은 산의 좋은 향나무를 베어 바닷물이 유입하는 곳을 찾아 목심을 묻었을까?

매향신앙은 <미륵하생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향을 묻는 것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가 미륵불과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을 제도할 때 미륵의 정토에 태어나서 살겠다는 소원이 담겨져 있다. 매향은 그들의 고통과 불안을 땅에다 묻는 것이었다. 단순한 향목에서 침향이 되는 때인 미륵불의 출현시기에 그들도 용화세계에 태어나 묻어 두었던 향을 파내어 부처님께 올리고 해탈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매향의 풍습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이런 매향의 풍습은 불교 의식중 미륵 신앙에 근원을 두고 내세와 현실의 세계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현세의 소망과 미래의 기원이 합일 되기를 기원하는 민간의 신앙이자 사회 규범의 한 종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혼란스럽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구태민안의 기원을 담고 이곳에 사람들이 모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맑은 산곡수와 해수가 마주치는 앞산(속칭) 자락에 매향 의식을 알 수 잇는 비문이 있다.

독특한 유적지와 문화재를 아직은 발굴하지 못한 우리 지역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700년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이곳은 환란을 극복하는 성지였던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는 것 만으로, 이해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매향의식이 구체적인 자료 수집, 연구를 통해 이를 재현함으로써 향토 문화의 주요성을 인식하는 새로운 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요문화재

매향비

남일대 해수욕장

남일대 해수욕장 전경 남일대 해수욕장 전경

시내 중심가에서 3.5㎞ 떨어진 동편에는 "남녘 땅에서는 경치가 빼어난 곳 "이라는 뜻의 남일대 해수욕장이 있다. 남일대라는 명칭은 신라 말의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지나치면서 경치에 반해 남일대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삼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각종 기암괴석과 수림이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고 질이 곱고 부드러운 모래밭과 맑은 물로 유명하다.

이곳 백사장은 예부터 인근의 부녀자들이 모래찜을 하던 휴양지로도 유명했으며 해수욕장 개장과 더불어 해변가요제, 바다 수영 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 개최로 해마다 피서객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의 따뜻한 인심에 반해 한번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잊지 않고 다음 해에 해수욕장을 찾는다.

또한 근처에서는 노래미, 볼락 등 바닷고기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낚시 마니아들도 즐겨 찾는다. 남일대 해수욕장 동편 바닷가에 마치 커다란 코끼리가 코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그 모양이 코끼리 같다고 하여 코끼리 바위로 이름 지어서 부른다.

진널전망대

진널전망대 전경 진널 전망대 전경

향촌동 신향마을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진널전망대는 삼면이 바다로 어우러져 있어 전망대에 오르면 한려수도 해상뿐만 아니라 멀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와룡산과 어부들이 그물질을 하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 뱃고동을 울리며 항만을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차량으로 전망대 입구까지 진입이 가능하여 가족단위로 나들이 장소로는 최적의 장소이고, 아침 운동으로 많은 주민이 즐겨 찾고 있다. 전망대의 모형은 선박의 조타를 상징하는 철골 조형물로 되어있으며, 편의시설로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겸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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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2-04-14 11: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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