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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석장승(민속자료 제3호)

가산 석장승 가산 석장승

마을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으로, 위쪽에 사람의 얼굴 형태를 그리거나 조각하고 아래쪽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보통 남여쌍이 되어 서 있다.

인간문화재 제516호 518호

가산오광대 보존회 회장, 인간문화재 제518호 한우성(양반)

가산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

  • 가산오광대 보존회 가산오광대 보존회
  • 가산오광대 가산오광대

가산오광대의 '가산'은 축동면 가산리의 지명이요, 오광대는 우리나라 민속가면극의 한 유형으로 경남 서부지역에 전승되어 온 탈놀이를 말한다.

가산리는 본래 진주목 부화곡면의 지역으로서 진주목이 관장하던 지역이다. 조선 영조때 이곳에다 조창을 설치했는데 이때부터 가산은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포구가 그렇듯이 이곳에서는 물이 귀했다. 300여호나 되는 큰 마을에다 조운배에까지 식수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으로 더욱 물이 귀했다.

뿐만 아니라 인근 8개 고을과의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멀리 서울과도 관계를 맺는 (한때 경강선인(京江船人)이라 하여 서울 뱃사람들이 세곡을 실어 날랐다)항시(港市 : 새장터)로서 붐비었기때문에 능히 탈놀음이 연희(演戱) 되었음직한 곳이라고 미루어 짐작된다. 또 가산에는 동제(동신제)인 천룡제를 지내는데 동제가 끝나면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돌장승(가산에는 8개의 장승이 있다)에게 간단한 고사를 지낸다.
이와같은 행사가 끝나면 정월 14일까지 지신밟기가 계속되고 풍물패들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걸립을 했다. 보름날에야 비로소 오광대놀이를 하는데 이곳의 오광대 놀이가 동제 뿐 아니라 조운배의 안전 운항 등과 깊은 관련을 지닌채 전승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종교적 측면과 더불어 옛가산의 이러한 경제적 여건은 오광대의 발전을 도운 또 하나의 유리한 조건이 되었으리라 보고 있다.

가산오광대의 연희는 1930년에 가장 성행했으며 그후 간간히 연희되어 오다가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부터 학계의 주목을 끌게 되어 1980년 11월16일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오광대의 연희과정은 제1과장 <오방신장무>, 제2과장<영노>, 제3과장<문둥>, 제4과장<양반>, 제5과장<중>, 제6과장<할미·영감> 등 모두 6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얼과 애환이 담긴 문화유산을 육성·보전하고 전승·발전해 나가기 위해 가산오광대 보존회가 발족되고 이어 1985년 9월 4일에는 전수회관을 건립하여 수많은 전수생을 길러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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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9-20 15: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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